Grace Story
은혜 이야기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07 (목)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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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이야기(2) 가죽옷

가죽옷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7-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창조된 인간의 성품 안에는 욕심이라는 성품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런 욕심이 없던 하와에게 어느 날 뱀이 와서 말을 시작했습니다. 뱀과 대화하던 중에 하와에게 새로운, 그동안 절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 나도 눈이 밝아지고, 죽지 않고, 선악을 알 수 있고, 하나님같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런 것이 정말 이루어 질 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욕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하와의 마음 밭에 욕심이라는 하나의 씨앗이 떨어졌습니다. 그 동안 없었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하와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 동안 사단이 그 세계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와는 사단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들이밀게 된 것입니다.


하와의 마음에 욕심이 잉태된 것입니다. 욕심이 단순한 생각으로 끝났다면 그것이 죄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하와의 욕심은 구체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욕심에 의한 구체적인 행동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하는 교만함이었습니다. 그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죄를 낳았습니다. 마음 안에 욕심이라는 것이 잉태되었다가 그것이 태어났습니다. 죄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고 하나님과 단절됩니다.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셨지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 잊었던지 무시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그렇게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아름다운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인간이 처음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죄를 지은 쪽에서 부끄러워졌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그 부끄러운 것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사이에 숨었고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부끄러운 곳을 가렸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반가웠지만 이제 하나님의 음성은 두려움의 음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면 아담과 하와가 했던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한 일이 부끄럽습니다. 수치스럽습니다. 남들이 내 죄를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태도가 달라집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말수가 적어지기도 하지만 호들갑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깊은 죄의식으로 어두운 곳에 숨어있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요란스럽게 어울리면서 자신의 잊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일에 혹은 무엇엔가에 몰두해 보지만 죄가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죄의식을 조금 가볍게 해보려고 옆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자선단체를 통해 자선의 영역을 확대해 보아도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죄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죄를 감추며 삽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어찌 속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낮을 피해 숨게 됩니다.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자신의 수치를 감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 죄와 수치를 감추는 많은 나뭇잎들이 있습니다. 거짓말의 나뭇잎, 위선의 나뭇잎, 겸손으로 위장하는 나뭇잎, 선행으로 감추어 보려는 나뭇잎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립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가리려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가리려 합니다. 그러나 나뭇잎은 자고나면 말라 비틀어져서 수치스러운 부분이 새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어디 보이는 곳은 없는지 매일 매일 점검해야 합니다. 피곤합니다. 사람이 삶의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이 나뭇잎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다면 믿어지겠습니까?


우리 삶의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 이 나뭇잎을 만드는데 사용되어집니다. 죄와 죄의식을 가려보려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죄와 죄의식도 무거운데 우리는 그 위에 매일 매일 죄와 죄의식을 그 위에 더 높이 쌓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짐은 집에 놔두고 밖에 나왔다가 집에 들어가서 지는 짐이 아닙니다. 이 짐은 우리 몸과 마음에 붙어 있습니다. 한시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정신 차리며 짐을 지고 다녀야 합니다. 잠깐 정신을 팔면 속에 있는 것이 튀어 나옵니다. 들켜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더욱 정신 차려야 합니다. 완벽주의가 그래서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노력들은 매일 매일 사람의 진을 빼어 놓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여도 매일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는 인간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피조물들이 죄의 짐으로 인해서 수치스러워 숨어 도망 다니는 모습을 그냥 보지 않으십니다. 매일 매일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고 나뭇잎을 엮어야 하는 모습을 불쌍히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가죽옷을 마련하셨습니다. 시들어 말라버리지 않는 가죽옷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가죽옷을 입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수치가 남들 앞에 드러날까 봐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됩니다. 편안해 집니다. 수치를 가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자비하심이라함은 우리의 죄를 가려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러하고 긍휼하심이라함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드러나지 않게 영구한 대책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 그렇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한, 죄의 대가에 대한 처리는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매일 매일 나뭇잎을 만들어야 하는 수고를 하는 불쌍한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가죽옷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 가죽옷은 어떻게 생겨났겠습니까? 가죽이 생겨나려면 짐승이 죽어야 합니다. 죽어도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다. 가죽을 벗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짐승은 모든 피를 흘리며 죽게 됩니다. 그 짐승의 피 흘려 죽은 죽음의 대가로 가죽옷이 생기게 됩니다.


짐승이 피 흘리며 죽은 것은 인간의 수치를, 인간이 지은 죄를 가려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빚으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 목적은 그 영을 나누어 받은데 있습니다. 그 영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을 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되어있었습니다. 그 영은 거룩하여 죄와 함께 거하시지 못하는 영입니다. 어느 날 아담과 하와 안에 죄가 들어왔고 그 거룩한 영이 아담과 하와에게서 떠난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육신은 살아 숨 쉬고 말하고 먹고 움직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죄가 인간 안에 들어왔고 사망이 인간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죄가 문제입니다. 이 죄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죄의 삯은 사망’(롬6:23)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이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레위기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사망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으려면 피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다. 왜냐하면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입니다.


가려할 수치, 용서 받아야 할 죄가 있고 그 죄를 가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피를 흘려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해서 지금 이 사건을 통해서 그 그림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 주시기 위해서 짐승의 가죽을 얻으려면 짐승이 피를 흘려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인류의 죄를 가려주시기 위해서, 용서하시기 위해서 죽으실 예수님을 미리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피 흘리시면서 짐승처럼 죽으셨습니다.


로마서에서는 그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5:8-9)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원래 의롭지 못한데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 의(義)를 얻기 위해 우리 쪽에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로서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하나님 앞에 아주 커다란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은혜의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로마서에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5-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치스러워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마련하여 주셨듯이 우리 모두의 죄를 가려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그 죄를 없다 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를 의인이라 불러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이 길을 마련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義人)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우리로 의인이 되게 하십니다.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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