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Story
은혜 이야기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07 (목) 14:15
ㆍ추천: 0  ㆍ조회: 2716    
은혜 이야기(4) 방주

방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8)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오실 때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이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의 세상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는데, 마치 그 옛날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때, 노아가 이 땅이 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사람들은 심판의 그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노아가 진실을 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는데 홍수가 자신을 멸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역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신다고 하신지가 벌써 2000년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믿고 있냐’고, ‘벌써 2000이 되었지만 아직 오시지 않은 것을 알고도 그것을 계속 믿고 있냐’고 조롱하며 말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우리에게 2000년은 주님에게는 겨우 이틀일 뿐입니다.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질지라도 주님께는 밤의 한 경점, 즉 밤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치 바늘 한 자국 낸 것처럼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우리 쪽에서 봐서는 아주 더딘 것 같을지라도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이 구원받기를 기다리시면서 하루 이틀 미루고 계시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분명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3-9)


노아의 때는 도대체 어떠했기에 그때의 비유를 드시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은혜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때는 이 땅에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그리고 그때 이 땅에 행하신 일이 지금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계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계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칸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창6:5-15)


창조 후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에덴동산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 땅에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사람들은 원래 지었던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들은 급속하게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철철 흘러 넘쳤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사람들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인간들의 더러움과 추함을 보다 못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하셨습니다. 땅은 놔두고 그 위의 모든 생명체를 심판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면에 있는 생명체의 모든 다른 생명체들은 암수 한쌍씩 살리시기 위하여 방주를 예비하라 하셨고, 그렇게 예비 된 방주에 심판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방주에 들어감으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물로 심판하려 하실 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연결되어 사는 삶)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는 말씀을 하시고 노아도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모두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것과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어 심판에 대비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방주에 대한 구체적인 규격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방주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의 암수 한 쌍씩 들어가야 할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을 하실 것이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롯이 사위들에게 말했더니 사위들은 장인이 농담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아마 농담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커다란 배가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겨주다가 나중에는 노아가 미쳤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이야기를 해 주듯이 그 모든 사람이 물의 심판으로 죽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다고 했습니다(마24:37).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노아시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땅은 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믿고 방주에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말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한가지뿐입니다. 노아가 기도 열심히 해서 잘 먹고 잘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나라를 이루며 살자고 사회운동을 하겠습니까? 2000년동안 주님이 오시지 않아서 기다리기에 지루해진 교회가 이런 저런 많은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을지라도 지금 역시 교회가 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믿고 심판에서 구원 받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시대, 이 상황에 대해서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할지라도 가장 우선적인 메시지를 빼고 다른 메시지만 전한다면 그것은 방주를 예비하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또 노아의 메시지는 삶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노아가 이 땅이 물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전하면서, 자식들을 사회에 출세시키려 노력하고 자기 집을 아주 튼튼하고 멋있게 짓고 있다면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마치 예수님이 안 오실 것처럼 이 땅에서의 축복만을 위해 산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겠습니까? 믿음에는 그에 따르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기다리는 예수님이 2000년이 되도록 안 오셨을지라도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만일 복을 받아도 주를 위하여, 만일 가난하게 살게 된다 할지라도 주를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 삶이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사람들은 그렇게 심판을 믿지 않고 살고 있을 것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이 그때와 똑같은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는 먼저 심판 받은 사람들의 역사가 없어서 아마 더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물로 심판 받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참 다행이라 생각이 됩니다. 아마도 그 옛날보다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때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노아의 식구 8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믿는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생겼습니다. 노아 때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이 교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도 있고 또 그때의 사람들과 같이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의 많은 사건들이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일들 가운데 역사적 순위에 따라 이미 다 이루어졌으며 또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두 다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 중의 제일 마지막부분이 바로 이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이 땅은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수 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 질 일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노아가 두 가지 은혜를 입었는데 첫 번째는 선택을 받아 그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고 방주를 준비할 수 있는 은혜이고, 두 번째 은혜는 그 방주로 인해 심판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두 가지 은혜일지라도 첫 번째 은혜만 있어서는 안 되고 두 번째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노아 자신에게 있어서도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았을지라도 방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나가거나 이런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이 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교회를 통해서 혹은 이런 글들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이 땅에 이런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이 있지만 복음을 접했다는 것, 그래서 심판에 대해 알게 되고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은혜에 들어가지 못하면 첫 번째 은혜가 무의미 합니다. 두 번째 은혜는 노아시대에 방주를 예비해 주심같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되어야 두 번째 은혜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방주는 노아가 예비하였고 그 방주에의 초청은 모든 사람을 향해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는 길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고 모든 사람들이 초청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주에 들어가기 위해 아무런 조건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 역시 아무런 조건이 필요치 않습니다.


물로 인해 멸망당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적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노아의 말을 듣고 방주에 들어갔었어야 했습니다. 방주 외에는 구원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죄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방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심판에서 구원 받는 길은 사람 쪽의 처지나 처신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노아시대의 방주는 이 시대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노아는 심판을 받지 말고 방주 안으로 피해 심판을 면하라 했지만 사람들은 방주를 바라보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직 믿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믿었다’면 방주로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그 구분이 확실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은 그 심판을 받지 않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나간다던지, 같이 예배를 한다든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는 것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내가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 그래서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방주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방주를 예비한 노아가 그들에게 원했던 것은 노아의 말을 믿고 방주로 들어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죄가 얼마나 있었던 없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이 의로우니(다른 사람에 비한 것일 뿐이지만) 자기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홍수로부터 구원 받을 유일한 방법은 방주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오직 방주만이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방주를 위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노아의 말을 믿고 들어가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에 들어오는 그들의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했고, 하나님께서 모두 쓸어버리실 마음이 들 정도로 타락한 세상이었지만 유일하게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신 것은 이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방주에 들어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앞으로 있어질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방법으로 구원 얻는 길을 마련해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노아의 말을 신뢰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방주에 들어갈 때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값없이 들어가면 됩니다. 나는 죄가 많은데 어찌 공짜로 들어갈 수 있겠냐고 미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혜는 값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단어에는 꼭 ‘값없이’ 혹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혹은 ‘선물’이라는 말이 꼭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피조물이 창조주를 믿어주는 것, 그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구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길을 믿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할 계획, 영원한 방주를 마련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오랫동안 계획하시고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방주가 마련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어주기를 바라시면서 말입니다. 심판을 미루고 또 미루고 계십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인내하시면서 미루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멸망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믿으십시오. 믿으셔야 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3-9)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의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0
3500
윗글 은혜 이야기(3) 아벨의 제사
아래글 은혜 이야기(5)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
에드몬튼 새길교회 Newway Baptist Church
3935 114 St NW, Edmonton, AB Canada T6J 1M3 TEL:780-238-2901 newwayedmonton@gmail.com
copyright at Newway Bapt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newwayedmont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