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Story
은혜 이야기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07 (목)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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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이야기(13) 도피성

도피성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수20:7-9)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해 나갈 때 요단강을 중심으로 한 48개의 성읍 중 6개의 성읍을 도피성이라 지정하였습니다. 요단 동편에 3곳(베셀, 길르앗 라못, 골란) 그리고 요단 서편에 3곳(게데스, 세겜, 헤브론)입니다. 이 도피성들은 이스라엘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의 전역 어디서든지 하루 내에 가까운 도피성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넓게 닦아 놓았을 뿐 아니라 여러군데 안내판을 눈에 잘 띄게 세워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습니다.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신이 중심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한 자는 죽음으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오살(誤殺), 즉 실수해서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경우가 생기거나, 혹은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경우에도 그 진상을 밝히기도 전에 피살자의 가족들이나 사람들로부터 즉각적인 보복을 받게 됩니다. 율법에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호소할 새도 없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억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자신의 결백은 증명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당한 재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도피성은 그런 사람들이 도피해 왔을 때 반드시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도피성의 운영 원칙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로는, 살인자가 과실로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살인에 대한 도구가 있거나 계획적으로 살인을 한 증거가 드러나면 구제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살(誤殺-실수로 사람을 죽임)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면 그는 도피성에서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 받습니다. 오살이라 할지라도 피해자의 가족들이 오살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죽이려 할 수 있기 때문에 도피성에서는 그 사람을 보호해 주게 됩니다.

두 번째는, 도망하는 자가 스스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피성 안에까지 혼자 도망해야 합니다. 도피성 안에서만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피하는 도중이거나 도피성에서 잠시 밖으로 나오게 될 경우가 생겼을 때 죽임을 당하면 보호 받을 수 없습니다. 도피성의 책임이 없습니다. 보호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이 오직 도피성 안에 있을 때만 해당됩니다.

세 번째는, 그 해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해 있던 자들에게 사면이 내려집니다. 일단 사면령이 내려지면 복수하려고 하는 사람이 살인자를 만나도 그를 죽일 수 없게 됩니다(민35:27-28). 그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이 무엇이길 때 모든 사람이 사면을 받습니까?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은 이해가 됩니다. 아주 합리적입니다. 정말 인간을 사랑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권리가 철저하게 보장됨을 느낍니다. 그런데 세 번째 조건은 엉뚱한 것이 튀어 나온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었는데 죄인들이 사면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 제사상이 그 살인자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살인자들이 죄를 사함 받게 된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도피성에 피해있는 살인자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엉뚱한 것 같은 도피성의 운영 방침을 주셨습니다.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출28:38)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제사장이 해야 하는 많은 일중에 하나가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는 일입니다. 정금으로 조그만 패를 만들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씨를 적어 넣습니다. 그리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대제사장이 쓰는 모자 위에 패의 글씨가 앞으로 보이게 매게 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머리에는 백성들의 죄를 상징하는 정금으로 된 패가 늘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그 패를 짊어지고 다닙니다.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지고 다니는 셈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대제사장이 죽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는 것이 됩니다. 바로 그 순간에 도피성에 피해있던 모든 살인자들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그 사람들의 죄를 지고 대신 죽은 것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죄를 사면 받은 사람으로서 도피성을 떠나 자기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막과 제사장을 세우실 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셨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심으신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있어질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그림자로서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안 그렇다면 엉뚱하게 이런 방법이 생겨날 이유나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중에서 세운 대 제사장은 눈에 보이는 성막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막을 위해 일하십니다. 영적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돌아가시면 사람들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는 이 놀라운 일에 대한 그림을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피성은 일단 피하는 자마다 보호함을 받게 되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는 안전한 성이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히4:14)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7:26-27)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24)


도피성의 성품은 무조건 받아줌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피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 주게 되어있습니다. 잘 잘못은 나중에 따집니다. 무조건 받습니다. 오는 사람의 출신과 성품을 따지지 않습니다. 문이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넓게 닦여 있고 군데군데 표지판도 큼지막하게 붙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가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찾아 갈 수 있습니다. 문을 닫아두지 않기 때문에 언제 듣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안전합니다. 그곳은 법적으로 보호를 해 주도록 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도피성의 성품으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예수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 주십니다.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로 가는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지 바라보기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곳에 계십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만나려고 하면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말씀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히4:14)이십니다. 죄가 없으신(히4:15) 대제사장이십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자기를 위하여도 제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해 날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서 모든 제사를 마치셨기 때문입니다(히7:27). 구약이 대제사장들은 눈에 보이는 성소에서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었지만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성소를 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히9: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모든 사람들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던 해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가야바는 눈에 보이는 성소의 대제사장이고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성소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가야바는 구약의 대제사장으로서 도피성의 원리, 그리고 대제사장이 죽으면 백성들의 죄가 사해진다는 성경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니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이 원리를 사용합니다.

가야바가 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게 된 배경은 물론 다른데 있습니다. 많은 표적과 이적으로 유명해져가고 있는 예수님으로 인해 민족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땅과 민족을 빼앗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을 위해서 한 사람 예수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11:49-53)


지금 가야바는 자기가 뜻한 바는 아니지만 스스로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죽여 버리기 위해 한 말이지만 결국은 예수님을 인류의 대제사장으로 인정하는 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야바는 지금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이면서 예수님에게 백성의 모든 죄 짐을 떠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 자기의 전권을 예수님에게 넘기는 장면인 셈입니다. 가야바는 지금 자기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말이 가야바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시고 죽으시고,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셔야 함’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중에 성(城)에 관한 아름다운 시가 하나 있습니다.


(시91편)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저자의 아름다운 고백이 나옵니다. 주님을 성(城)으로 비유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무조건적인 신뢰입니다. 저자는 그 성의 기능을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그 성에 가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어떤 재앙도 자기에게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안은 마치 하나님의 날개 밑에 거하는 포근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 밖의 많은 사람들이 파멸과 황폐함으로 죽어갈지라도 그 모든 재앙이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피난처로 여기고 거처로 삼았으니” 내가 확실히 보호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기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주는 것보다 하나님의 기쁨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름 안에 있는 안전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 안에 있는 평안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 안에 있는 보호하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피할 성(成)이십니다. 우리를 은밀하게 감추시는 성이십니다. 모든 재앙으로부터 시키시는 성이십니다. 우리가 이 성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성으로 피하는 사람들은 그 성의 성품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심을 당하는 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알아주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이름 안에 있는 죄 사함을, 그 이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그 이름 안에 있는 구속함을, 그 이름 안에 있는 하늘의 평안을, 그 이름 안에 있는 보호하심을, 그 이름 안에 있는 치유함을, 그 이름 안에 있는 놀라운 능력들을, 그 이름 안에 있는 지혜를, 그 이름 안에 있는 의롭게 됨을, 그 이름 안에 있는 거룩함을 알아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안에 들어와서 그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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