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Story
은혜 이야기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07 (목)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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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이야기(16) 므비보셋

므비보셋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 저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묻되 네가 시바냐 가로되 종이 그로소이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삼하9:1-13)


마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길은 불안합니다. 자기 집에 지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숨겨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등극한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핍박을 받았었기 때문에 이제 사울의 가문의 모든 사람은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그 왕은 보통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먼저 왕의 모든 가족들을 죽이기 마련입니다. 마길이 생각하기를 보통 왕들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울의 핍박을 받아온 다윗은 오죽 하겠는가 싶은 것입니다. 므비보셋을 숨겨두고는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아마 자신도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마길과 그 동네 사람들은 므비보셋을 그냥 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므비보셋의 할아버지 사울 왕이 자기들의 지역이 암몬 족속에 의해 다 죽게 생겼을 때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구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바로 직전의 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동네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왕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갈 곳이 없어진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숨겨주고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입니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 므비보셋이 다섯 살이었는데 다윗이 사울의 집안사람들을 죽일 것을 염려한 유모가 므비보셋을 구하려고 도망가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므비보셋은 그때부터 두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습니다.




시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바는 사울 왕이 집권하고 있을 때 사울왕 집안의 집사였습니다. 그 역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다윗이 집권을 하자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다윗 왕이 그 시바를 불렀습니다. 시바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다윗 왕 앞에 엎드렸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있는 시바에게 다윗왕은 사울의 자손 중에 살아남은 자가 있는가 묻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합니다. 사실로 믿어야 할지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어떻게 다윗의 의중을 파악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이 한 사람 살아있다고 사실대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시바는 다윗에게 그는 ‘절뚝발이라고 말합니다. 절뚝발이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죽이기에 별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이고, 은혜를 베풀기에 역시 별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을 시바가 절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슬피 울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1:26)

다윗의 마음에 요나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하였습니다. 비록 한동안 죽고 죽여야 하는 상대편에 섰었을 지라도 요나단이 자기를 향한 사랑을 늘 느끼며 살았었습니다. 요나단의 다윗을 향한 사랑이 여인을 사랑하는 사랑보다 더 깊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지금 요나단의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아8:6)고 했습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것에 대한 원한보다 요나단과의 사랑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에는 사울의 가문에 원수를 갚을 마음보다 사울의 가족들에게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은혜를 베풀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의 집사였던 시바를 불러서 사울왕의 가족 중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시바가 말을 하기를 므비보셋은 로드발 아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므비보셋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유모의 깊은 배려(?)로 인해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양발을 심히 절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어디를 가지도 못했습니다. 다윗을 피해 멀리 도망가고 싶어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길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의 거처를 마련해 준 것만 해도 감사할 다름이었습니다. 왕의 손자로 살 때 누리던 부귀영화가 다 없어졌습니다. 몸도 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쫓기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세를 보면 절망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궁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왕이 자기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안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마음을 먹고 있을 때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다윗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요나단은 이미 죽었지만 그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불러오라 했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마음에 마치 죽었던 요나단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은 설레임이 생겼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요나단의 아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로 인해서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의 모든 재산을 다 그 아들에게 줄 작정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시중을 들었던 그 모든 사람들을 다시 그 아들에게 줄 작정입니다. 그 아들은 매일 자기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할 것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줄 작정입니다. 왕자처럼 그를 대해 줄 것입니다. 다윗은 아직 므비보셋을 보지 못했지만 그를 위해 모든 계획을 해 놓았습니다. 다윗의 요나단을 향한 사랑은 사울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컸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이 이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모르는 므비보셋은 다윗의 앞에 깊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자기 가족들이 다윗을 많이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다윗 앞에 나아가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두려웠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었을 때 무조건 도망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죽고 할아버지가 죽이려던 자가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의 생각에 자기의 집안은 다윗에게 있어서 원수일 뿐입니다. 그래서 숨어서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이 자기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므비보셋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므비보셋을 찾아냈고, 군사들이 므비보셋을 다윗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윗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말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으로부터 의외의 말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은총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그동안 할아버지 때문에 숨어 다녔습니다. 할아버지가 다윗에게 잘못한 것이지만 그것을 결국 가문의 잘못입니다. 할아버지의 왕의 권위 덕에 먹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덕도 같이 먹고 마시고, 죄도 같이 마시는 셈입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죄와 상관없다고 선포하고 따로 나와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향해 직접 칼을 들이 않았어도 할아버지와 같이 취급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망 다녔고 그래서 숨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요나단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은혜를 베풀겠다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그동안 할아버지 때문에 숨어 다녔지만 지금은 아버지 때문에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에 대하여 한 사람 할아버지 사울은 가문에 죄와 사망을 불러 왔지만 다른 한 사람 요나단은 생명과 은혜를 불러 왔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계획한대로 왕자와 같은 자리로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로 인해서는 죽임을 당해야 할 신세였지만 아버지로 인해서 다시 왕자와 같은 자리로 회복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유였던 모든 토지, 모든 집들, 모든 재산을 다시 돌려받았습니다. 날마다 왕이 먹는 식탁에서 식사를 합니다.


다윗과 사울,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는 마치 하나님과 아담,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처럼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성경은 로마서 5장 12절과 15절에서는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5:15)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가 들어올 때 사망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죄로 인해 그 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했습니다. 그들이 짓지 않는 죄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의 죄 밑에 있게 된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마치 자기가 짓지 않은 죄로 인해 다윗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녔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들을 심판 받아야 할 존재로 보시고,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감히 나가지 못하고 숨어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마치 사울의 다윗을 향한 죄로 인해서 사울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아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사울의 밑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윗을 향해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밑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직접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죄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그렇게 사망이 임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15절 말씀은 그와 반대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반대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치 사울로 인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요나단으로 인해서는 은혜를 받게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볼 때 그 안에 있는 요나단을 보고 있습니다. 다윗의 요나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요나단의 아들을 요나단을 사랑하듯이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실 때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말미암는 선물을 받게 됩니다.


므비보셋의 가문에는 가문에 사망을 불러온 사람과 생명을 불러온 사람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라는 가문에 아담이 있었고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가 아담의 가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사망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오라고 하십니다. 값없이 마련하신 그 은혜를 받으라 하십니다. “돈 없이 값없이”(사55:1) 은혜를 받으라 하십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계획한대로 왕자와 같은 자리로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로 인해서는 죽임을 당해야 할 신세였지만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해서 다시 왕자와 같은 자리로 회복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유였던 모든 토지, 모든 집들, 모든 재산을 다시 돌려받았습니다. 날마다 왕이 먹는 식탁에서 식사를 합니다. 마치 집을 나갔다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제일 좋은 신을 신기며 신분을 상징하는 반지를 끼워주었던 아버지처럼 다윗은 므비보셋을 그렇게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요나단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우산 속에서제일 인으로 도망 다녔었지만 이제 요나단의 우산 속에서 안전합니다. 죽음 앞에 있던 목숨이 새로운 생명이 된 것입니다. 아담의 우산 밑에서는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우산 밑에서는 모두 살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스스로 “죽은 개 같은 나”라고 말합니다.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양쪽 다리를 다 심히 접니다. 다윗의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입니다. 다윗을 위해 무엇인가를 도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은혜입니다. 대가를 지불할 것이 없을 뿐 더러 지불할 방법도 없습니다. 전적인 은혜일뿐입니다. 거절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다윗도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 왕의 식탁에 두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이 있지만 다윗은 전혀 남의 눈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므비보셋일 뿐입니다. 므비보셋은 이런 다윗의 사랑과 은혜의 초청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함으로 누리며 살았습니다. 므비보셋의 고백, “죽은 개 같은 나”라고 하는 고백은 바로 하나님앞에서 우리들의 고백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벌레 같은 나”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우리 존재를 보면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 밖에 다른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은혜를 아는 므비보셋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향해 반역을 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습니다. 다윗은 성에서 황망하게 도망을 해야 했고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다윗과 함께 도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므비보셋의 종 시바는 다윗이 도망가는 길에 떡과 건포도와 과일과 포도주를 준비하고는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집과 땅과 노비들을 자기의 소유로 만듭니다. 므비보셋은 왕궁에서 나라를 탈취하려고 한다고 모함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므비보셋은 다윗과 같이 도망하려 하였으나 시바가 므비보셋을 속이고 다윗에게 거짓을 고해서 다윗의 미움을 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몸이 불편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도망해야 했던 그 날부터 므비보셋은 발에 맵시를 내지 않고, 수염을 까지 않았으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윗을 향한 자기의 마음을 표해했던 것입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장군 요압에 의해서 죽고 다윗이 다시 성으로 귀환했습니다. 귀환하는 다윗을 맞이하는 므비보셋의 모습과 대화속에서 므비보셋을 향한 다윗의 오해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19:24-30)


악한 종 시바가 자기 주인 므비보셋을 ‘참소’ 했습니다. 참소라는 말은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므비보셋은 정말 억울합니다. 다윗이 생각하기에 므비보셋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 자로구나라고 한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답을 그의 사환 시바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은혜를 아는 므비보셋은 처음부터 다윗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므비보셋의 태도는 은혜를 아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


참소는 사단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밤낮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참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어떻게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윗은 인간이기에 므비보셋의 진실을 모르고 한때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어떻게든 우리를 하나님과의 사이를 벌려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잘 아는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서 숨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과 사단 앞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계속해서 시바가 다윗에게 참소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므비보셋의 태도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을 받게 됩니다. 은혜를 아는 자의 마땅한 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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