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of God
하나님의 임재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10 (일) 09:32
첨부#1 0c7cfb3aab4d4c0c7c0d3c0e7.jpg (12KB) (Down:42)
ㆍ추천: 0  ㆍ조회: 2895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1) 내재, 동행, 임재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 연재를 시작하며



요즈음처럼 “하나님의 임재”라는 말을 많이 쓰는 시대가 없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몇 번은 사용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무척 많이 사용한다. 나 역시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좋아서 자주 쓰고 싶지만 그 진정한 의미들을 공감한 후에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많이 자제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령의 내재(內在)하심이나 예수님의 동행(同行)하심을 “하나님이 임재”로 생각하기 쉽다.



내재, 동행, 임재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재(內在)하시고,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동행) 하시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님의 내재(內在)와 예수님의 동행(同行)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내재하신 성령님으로 통한 감동이나, 동행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사역하시는 일들을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예수님의 동행과 하나님의 임재의 차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모든 것을 비우고 오신 분이시다(빌2:6-7). 그러므로 죄인들과 같이 있으실 수가 있으시다. 만일 하늘의 능력과 거룩함을 그대로 가지고 오셨으면 거룩한 장소가 필요하다. 한 지역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곳에 계셔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능력을 비우고 이 땅에 오셨다. 그러기에 사람과 함께 거하실 수 있으셨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당신의 영광을 버리고 오시지 않으시고 그 영광을 그대로 입고 오셨다면 이 땅에서 예수님 가까이 접근하는 모든 죄인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마치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처음 임재하실 때 산에 아무도 올라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죄 있는 인간이 그 영광을 침벙하면 죽임을 당케 될 것이라고 하셨던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 하늘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그 영광을 다 내려놓고 오셨기에 죄인과 함께 거하실 수 있으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6-7)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신다(마28:20). 제자들이 실수를 하고 혹 죄를 짓더라도 함께 하신다. 한번 실수를 하고 한 번 죄를 짓는다고 이제 함께 할 수 없겠다고 떠나시는 분이 아니시다. 지금 영으로 계신 예수님은 바울(사울) 이 죄인 되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이 있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하셨다. 예수님 주위에는 늘 죄인과 세리, 창기들이 함께 하였다. 하나님의 임재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려고 오셨다.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함께 있으셔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새로운 몸을 입으셨다. 부활하신 주님이시지만 사람들과 같이 길을 다니시고, 앉아서 모닥불을 피워 고기도 구워 드셨다.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냥 나타나실 수도 있으셨다. 도마에게 손이 못 자국을 만져보고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제자들의 거룩함의 여부를 떠나서 같이 계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의 거룩함의 여부를 묻지 않으신다. 우리의 상태를 묻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렇게 하실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려면 피로 성소 안와 밖을 피로 정결케 하신 다음에야 거하실 수가 있으시다. 하나님의 임재와 예수님의 동행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임재의 차이



성령이 임하셨을 때 그들의 삶이 완전히 거룩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 안에 임하셨다. 성령의 임하심은 죄를 짓는다 해도 바로 떠나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그렇게 사람들안에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안심케 하시고, 위로 하시고, 기쁨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사람들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



사람들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근심하시고(“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4:30), 성령의 음성을 불순종함으로 소멸되기도(“성령을 소멸치 말며” -살전5:19) 하신다. 그럴지라도 거룩하지 않은 우리를 끊임없이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시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게 하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하셔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시며, 병들을 낳게 하며,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셔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증거로 삼으신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 역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요14:16)고 말씀하시고 우리 속에 거하실 것이라(17절)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빛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빛을 통해서 깨달음이 있을 때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커다란 감동이 생긴다. 거룩한 감동이 생기는 것이다. 이 거룩한 감동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끔 사람들은 이런 순간들을 하나님의 임재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를 책망하신다.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실 때는 내가 죄의식을 가졌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 죄에 대해서 통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마음을 갖게 하신다. 그래서 죄를 고백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의욕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는 죄가 있는 사람에게 있을 수가 없지만 성령의 감동은 이렇게 늘 사람들에게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하셨더라도 아직은 하나님의 임재는 아니다.



영을 좇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늘 성령과의 교통을 통해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또 사역에의 부르심으로 인도받게 된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사는 삶을 살수록 성령의 음성에 더욱 민감해 지지만 우리가 죄와 허물 가운데 있을 때라도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인도하신다. 아무리 타락한 그리스도인이 있더라도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음성을 통해서라도 인도하심을 멈추지 않으신다.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리스인이면 누구든지, 어떠한 음성이든지 들을 수 있다.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s)을 할 때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 이때 잃었던 영적 감각을 가장 많이 회복되는 순간이기도 한다. 그래서 영감(靈感 inspiration )있는 노래라고도 한다. 영적인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예민한 영감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감각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기 때문이다. 약속의 말씀을 잃어버릴 때가 있고, 믿음을 잃어버릴 때가 있고, 하늘의 가치를 잃어버릴 때가 있고, 부르심의 소망을 잃어버릴 때가 있고, 주님으로 인해 충만해졌던 기쁨을 잃어버릴 때가 있고, 소유했던 하늘의 평안을 잃어버릴 때가 있고, 주님의 성품으로 살던 우리의 모습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영적 감각을 충만하게 살려주는 노래들, 신령한 노래들을 부르거나 들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잃었던 것들에 대한 회복을 받게 된다. 다시 용기가 나고, 다시 믿음으로 충만해지며, 다시 부르심을 향한 힘찬 걸음을 할 수 있게 해주신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는 것이다.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를 하나님이 임재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동행 혹은 동거라고 말하고 임재라고 하지 않는다. 함께 거하시며 같이 다니시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임재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님의 내재하심과 예수님의 동행하심과 전혀 다른 것이다. 앞으로 자세하게 살피려고 한다. 그러나 성령님의 내재하심과 예수님의 동행하심으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임재로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예배해도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고, 예수님을 예배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해 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이해야 한다. 성령의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개신교 예배의 정점은 말씀선포에 있다. 그래서 예배 순서가 주로 말씀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말씀 선포가 예배의 가장 정점에 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닫게 도와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거나 들을 때에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카톨릭 예배의 정점은 성찬식에 있다. 성찬식은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념(remembrance)한다. 그러므로 이 예배의 정점은 예수님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했을 때 조금 더 나아가야 하겠다. 우리가 예배하러 모일 때 하나님을 예배하러 모이지만, 사실 예배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듣는 것이나, 성찬식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념하는데 그칠 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하며 찬양하는 시간은 실제적으로 거의 없음을 보게 된다. 찬양도 사람을 향하고, 말씀도 사람을 향한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찾기 힘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는 무엇인가? 앞으로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필요한 것,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살펴보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임재가 우리의 예배가운데 임하시는, 그리고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존전, 임재가운데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야 겠다는것이다.



성령님, 예수님과의 동거, 혹은 동행만으로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것, 혹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0
3500
윗글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2) 성경의 두 가지 주제
에드몬튼 새길교회 Newway Baptist Church
3935 114 St NW, Edmonton, AB Canada T6J 1M3 TEL:780-238-2901 newwayedmonton@gmail.com
copyright at Newway Bapt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newwayedmont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