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of God
하나님의 임재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10 (일)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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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하나님의 임재(12)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지성소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거룩함과 순종할 태도로 지성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있다. 법궤위에 속죄소가 있고 그 양쪽 옆으로 천사가 서 있다.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 피를 가지고 들어가게 된다. 그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가능하다. 그 피를 자기를 위해 손가락에 찍어 속죄소에 동편에 뿌리고 속죄소 앞에 일곱 번, 그리고 온 백성을 위해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리게 된다(레16:14,15). 하나님께서는 바로 두 구릅(천사)가 마주보고 있는 그 중앙, 속죄소에서 만나시겠다고 하신다.


그 속죄소 밑에 법궤가 있다. 그리고 이 법궤 안에 세 가지 물건이 있다. 이 법궤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보여주는 기념물들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물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세상을 향해 일하시는 방법을 상징한다. 그 안에는 돌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다. 말씀도 하나님께서 주셨고 만나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며 아론의 죽은 지팡이에 싹이 난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세가지 방법으로 백성을 인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돌판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우리를 향해 늘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기록된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지만 사건과 사건들 속에, 그리고 가야 할 길을 위해 늘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늘 우리의 사건 해결을 위해 기록된 말씀에서만 찾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닥친 사건들에 대한 조명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사건이 지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사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고 기록된 말씀을 조명하셔서 알게도 하신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든지 우리에게 분명한 뜻을 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순종만 남아있다.

기록된 말씀이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기록된 말씀은 이론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의 말씀은 살아 움직인다.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위엄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말씀이 그렇게 임할 때 꺼꾸러지지 않을 수 없다.


이사야가 하루는 하나님의 이 지성소에 초대되었다(사6:1-8). 높이 있는 보좌에 하나님께서 앉으셨고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하나님을 보좌하는데 마치 법궤위의 지성소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렸으며, 두 날개로는 날며 노래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충만하도다”라고 노래한다. 노래하는 소리로 인해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안에 연기가 가득하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이사야는 두려워 떨었다. 이사야는 단순하게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실제 하늘의 장막에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 서있는 자는 누구든지 두려워 떨게 되어 있다.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앞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만군의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에 이제 자기는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자기의 살던 삶이 부정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사 하나가 불집게로 단에서 취한 숯을 가지고 와서 입술에 대고는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해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낼 사람을 위해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나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나서게 된다.


이것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한 장면이다. 임재 가운데 일어나는 일은 양방(兩方)이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이다. 하나님과 모세가 처음 만났을 때도 양방이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반응이 있다. 그래서 해결될 것이 해결되고 결정될 것이 결정된다. 임재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임과 동시에 천군천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만나 항아리는 공급하심이다.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분(provider) 이시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이 땅을 지금도 창조의 법칙대로 운영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특별하게 인도하신다. 창조의 법칙과 상관없이 인도하신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만나를 먹이셨다. 애굽에서 만나가 내린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만나가 내렸다.

광야는 홍해 후에 있다. 광야는 구원 받은 사람들의 훈련을 위하여 있는 곳이다. 구원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만나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에게 만나를 주신다. 만나는 구원 받은 자들이 먹어야 하는 양식이다. 육체의 삶을 위해 공기와 물과 음식과 운동이 필요하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 태어난 영도 그 영을 지탱해주는 음식과 물이 필요하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얻어야 할 생명과 유지되어야 할 생명이 있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는 얻어야 할 생명이고, ‘더 풍성히 얻게’는 유지될 생명이다. 그런데 그 유지될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해 지게 된다. 우선은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풍성한 생명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영적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만나 항아리는 얻기 위한 생명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생명을 위한 양식을 담아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신 분일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의 풍성함을 위해서 공급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임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는 일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양식’을 발견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것이 없다. 전해 줄 것이 없으면 말씀을 듣는 사람이 생명이 없다. 생명의 양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을 꾀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공급하심을 위해서 미리 예비하시는 분이시다. 목자가 어디에 풀이 있고 어디에 물이 있는지 안다. 양이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광야길에서 그들보다 앞서 행하신다. 어디에 장막을 칠지 어디에서 쉬면 될지 다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안에서 편안히 쉬면된다. 그래서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신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신1:30,33)

하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먹고 마심의 문제뿐 아니라 전쟁에서 역시 두려워 할 일이 없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늘 풍성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이 공급하시는 하나님,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렸다(렘2:13). 그들은 눈에 보이는 양식과 눈에 보이는 물이 풍부하다고 진정한 양식이 되신 하나님을 외면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암8:11)을 당했다. 하나님과의 교통함, 사귐, 임재함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살아있는 하나님을 뵙지 못하면 살아있는,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채우지 못할 것들로 채우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쌓아 놓으면 배부를 것이라 생각했다. 일시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즐기면 목마름이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모든 인생이 그렇다. 사람 안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신 수 있는 공백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다. 어느 날 범죄함으로 그 영이 빠져나가 버린 흙은 자기 존재 가치를 잃어 버렸다. 인간 안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 공백이 생겼다. 이제 그 영이 채워지기 전에는 절대 만족함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에서 공급해주는 것들로 채우면서 그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런 그들을 이렇게 초청하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1-3)


이 초청에 응해야 한다. 은혜로 부르시는 초청에 응해야 한다. 이 초청에 응하지 않고 우리의 굶주린 영혼, 갈한 영혼이 만족함을 얻을 수 없다. 값없이 와서 먹고 마시라고 하시는 초청에 응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소생한다(restore).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 유지되어야 할 생명의 공급을 충만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영혼이 힘을 얻는다. 일을 할 수 있다. 죽어가던 영혼이 다시 소생케 된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의 생명이다.

죽었던 마른 나무에 싹이 났다. 부활의 능력이다. 죽은 것을 부활시키실 수 있으신 분이시면 죽어가는 것을 소생시키시는 것은 더 쉬운 일이다. 소생시키시고, 치료하시고, 회복하시고, 다시 세우시는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사단이 이 땅에 온 것은 우리를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함이다(요10:10).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사단에게 송두리째 빼앗겼다. 사단으로 인해 영이 죽었고, 영이 죽음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덴에서 쫓겨나서 영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몸은 늙고 병들고 결국은 사망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영이 있을 때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성품은 다 없어지고 악한 영의 열매를 맺으면 사는 존재들이 되었다. 죄를 지은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고 하신 말씀처럼 죄를 지은 우리는 사단의 종살이를 하며 살았다.

그 삶이 애굽을 상징하고,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꺼내신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단의 손에서 끄집어내어서 영원한 나라로 옮기셨다. 영생을 얻게 하셨다. 살아 있지만 부활의 생명을 이미 얻게 된 것이다. 이 부활의 생명이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씩 하나씩 원래의 모습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회복이 바로 부활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하나님이 임재 안에 들어갈 때 마다 우리는 신선함을 얻게 된다. 썩어져 가던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힘과 거룩한 성품이 자리 잡게 된다. 이 소생케 하시는 부활의 능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담겨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마다, 땅을 밟는 곳마다 사람들을 소생시키신다. 사단에게 잡혀 있는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병든 몸을 치료하고, 파괴된 관계들을 회복시킨다. 이 능력을 힘 입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임재를 위해 우리 쪽에서 필요한 것은 거룩과 자기 부인이다. 그리고 임재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일하시는 것은 말씀하심과 공급하심과 부활의 생명이다. 우리 쪽의 이 두 가지와 하나님 쪽의 이 세 가지의 만남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과의 완벽한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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