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of God
하나님의 임재
 
작성자 김동규
작성일 2016-01-10 (일)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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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하나님의 임재(5) 신을 벗고, 옷을 빨고

신을 벗고, 옷을 빨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출19:9-12)


모세가 처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해야 한 것은 신을 벗어야 하는 것이었고, 이스라엘이 처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해야 했던 것은 옷을 빨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다.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온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명령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우리 쪽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접근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신을 벗고 옷을 빨고 스스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야 그들을 만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임재의 형태로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의 한 장소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곳으로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명하셨다. 노아에게도,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이렇게 나타나신 적이 없었다. 성령의 형태로, 혹은 천사를 보내신 형태로 나타나셨지만 이렇게 직접 한 장소를 “거룩”하게 하시고 친히 임하셔서 모세를 부르신 적이 없으셨다.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 명령하신다. 왜 신을 벗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으시다. 단지 “단지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이유를 말씀하실 뿐이다. 분명히 경계를 그으시는 것이다. 그 동안 모세가 살던 곳은 거룩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그 거룩하지 않은 땅을 살던 모세에게 거룩하지 않은 땅을 딛고 살던 그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거룩함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거룩하지 않은 곳을 딛고 살던 모세를 그냥은 용납 못하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룻기 4장8장에서 보아스의 친족이 보아스로 하여금 룻을 얻게 하기 위해 기업 무를 자로서의 우선순위인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며 신을 벗는 장면이 나온다. 7절에서 설명하기를 이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것이 전례가 되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때 신을 벗게 되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 속에서 모세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것을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를 부르시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 종으로서 애굽에 보내시려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모세는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하시는 부르심이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약속의 땅을 한 번에 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믿음이 없는 옛 세대들이 광야에서 다 죽은 다음에 믿음의 세대들을 여호수아를 선봉장으로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의 선봉장인 여호수아에게 역시 신을 벗을 요구하신다. 이제 약속의 기업,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천사장을 보내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당시 이스라엘의 대표인 여호수아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립하신다. 여호수아는 자신은 “주의 종”임을 고백한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싸인이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애굽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면서 자신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은 그림임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은 신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홍해에서 죽음으로 그들의 삶의 방향성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우리는 창조의 목적을 잃고 우리를 위해 우리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그 누구도 이런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이 땅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삶의 전환이다. 모세는 신을 벗음으로 하나님께 권리를 이양했고, 이스라엘은 홍해에서 죽음으로 자신들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다른 방법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였다.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되는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거룩함이다. 성결함이다. 깨끗함이다. 모세에게 원하신 것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면, 이제 그런 삶의 형태를 지닌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거룩이다. 모세를 당신의 임재 가운데서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임재의 장소인 거룩한 산에 부르시고는 그들을 만나겠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그들로 하여금 만나기 전에 먼저 성결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처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해야 한 것은 옷을 빨고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들이 모세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대면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내산 밑에서 시내산 위에 구름으로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멀리서 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에 원하신 것은 거룩함이다. 성결함이다. 옷을 빨고 스스로를 성결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스스로를 성결케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산 밑에서 산 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경고 하신다. 만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산으로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경계선을 주시고 그 선을 넘지 말라고 하신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지성소, 즉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곳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일 년에 한차례 대 제사장만 들어간다. 그것도 피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만일 함부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고, 하나님의 임재의 특징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하여 계신 곳의 현상이다. 이것이 또한 성령의 내주(內住)하심과 예수님의 동행하심과의 차이인 것이다.


시내산위에 구름으로 강림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성막으로 옮겨진다. 이 성막, 법궤와 이스라엘과 동행이 시작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신 것은 그들의 거룩함, 성결함이었다.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는 동안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광야에서 길을 내셨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하시면서 그들 앞에 단 한 가지 조건만을 내세우신다. 그것은 백성들의 거룩함이다. 성결함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단 하나의 조건인 것이다.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로 그 가운데 있는 내 장막을 더럽히고 그 부정한 중에서 죽음을 면케 할지니라”(레15:31)


이스라엘이 이동하거나 장막을 칠 때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4지파씩 이동하거나 장막을 쳤다. 그러나 그 모든 이스라엘의 진영이 다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부정한 것이나 가증한 것, 죄악이 있으면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장막을 더럽히게 되는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계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임재해 계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필요로 하는 일은 단 한 가지,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광야 생활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거룩함을 위한 몇 가지 말씀들을 살펴보자.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13:5)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19:1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신21:9)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레7:20)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7:21)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레13:46)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이 단체로 거룩해야 하는 일’에 대해 집착하고 계신지에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범하는 죄들에 대해서 ‘이 정도쯤이야’할지 모른다. 늘 죄에 찌들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여러 명령들을 심각하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이런 일을 자꾸 말씀하시는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거룩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계실 수가 없으시다. 그들이 비록 어린양의 피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홍해를 통과하며 자신들을 죽였더라도,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동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인 거룩함을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마5:8)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청결함이라고 하신다. 히브리서에서 역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마다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말씀하신다.(히12:14) 히브리서는 그 이후(히12장18-24)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었던 일과 신약의 하나님의 임재의 차이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다. 지금 우리는 구약, 모세 시대의 임재를 보고 있지만 후에 히브리서를 통해서 신약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거룩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무조건 택하셨고, 무조건 복을 약속하시고, 무조건 백성 삼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커다란 민족을 이루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 땅에 당신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일을 시작하실 때 그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백성들로서 사용되어지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권리 포기, 즉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함과 동시에 우리의 삶의 거룩함과 관련이 있음을 보았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고백이 이 두 가지인 것이다. 첫째는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대로, 구원하신 목적대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대로,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거룩함, 성결함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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