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of God
하나님의 임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10 (일) 05:14
첨부#1 0c7cfb3aab4d4c0c7c0d3c0e7.jpg (12KB) (Down:39)
ㆍ추천: 0  ㆍ조회: 2976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3) 임재는 애굽이 아니라 광야에서 시작되었다

임재의 시작 - 임재는 애굽이 아니라 광야에서 시작 되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애굽이 아니라 광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지만 애굽은 하나님이 임재가 있었던 곳이 아니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임재는 에덴동산에서의 임재 외에 시내산(호렙산)에 처음 있었다. 하나님께서 한 장소를 스스로 거룩하게 하시고 모세를 부르셨던 그 곳이다. 성경에 처음으로 거룩한 장소에 대해 말씀하신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 전에는 거룩이란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창조 때 안식일을 정하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을 때 외에는 거룩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모세를 부르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직접 이 땅에 임하신 일이 없으셨다. 그 동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거나 아니면 성령으로 사람들을 만나셨을 뿐이었다. 이 땅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만한 거룩한 곳이 없었다. 그러던 때에, 이 땅위에서 거룩한 장소라는 곳은 하나도 없었던 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 위를 스스로 거룩하게 하시고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아담과 하와 이후에 이 땅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모세가 처음으로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뵈었다. 옛날, 아담과 하와가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뵈었었다. 같이 지냈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그리고 임재 해 계시던 그곳,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로는 사람 중에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이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임재하신 것은 아니었다.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사 방주로 구원하셨지만 임재하신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지만 임재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어떤 장소를 정하시고 그 곳에 임재하신 적이 없으셨다.


모세는 백성을 구하려고 스스로 나섰다가 실패하고는 광야로 도망 나왔다. 광야에서 십보라와 결혼하고 장인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고 있었다. 양을 치던 어느 날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 않는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이것을 자세히 보려고 돌이켜 가는데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다. 부르시면서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하신다. 모세는 거룩한 땅이라고 부르는 곳에 처음으로 선 사람이 되었다. 땅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이 계신 땅이 거룩한 곳이 되었다.


왜 하나님의 임재가 이곳 광야인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계시니 그곳에 계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셔야 한다면 당신이 인도하시는 그 백성들 가운데 계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종살이하는 곳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 이 한복판에 있는 산, 그것도 한 장소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것이다. 모세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줄을 상상도 못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 있었지만 그들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광야로 도망 나온 모세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가서 그들을 구원해 내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너를 보내겠다고 하신다.(출3:10) 그리고는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어 이곳까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까지  오라고 말씀하신다.(출3:12) 구하는 것은 모세를 “통해서” 구하시겠지만 그러나 그들이 이곳,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이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애굽에 들어가면 모세를 통로로 삼으셔서 당신의 능력을 행하실 것이다. 모세의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다. 능력을 나타내실 뿐이시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이 산까지 와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이 “섬긴다”는 말은 예배와 봉사가 함께 포함이 된 말이다. 절하며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것과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섬긴다는 말이 포함이 되어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때로부터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애굽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출해 내신다고 하신다. 그러나 이 산에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시작이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예배와 봉사가 이 산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직접 들어가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계5:9). 이스라엘은 해방된 다음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신약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다음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해방된 다음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고, 신약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후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려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광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결별을 하고서야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구약과 신약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같은 의미가 있고, 홍해를 건너는 것과 세례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사건이다. 동일하게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속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영원한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된다. 그 다음의 홍해는 세례다. 장사되는 것이다. 죽는 것이다. 홍해를 지났다는 것은 죽었다가 이제는 새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옛 생명을 장사 지내고 새생명 가운데 살기 시작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히10:2) 받았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물에 들어갈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심과 합하여 장사되는 것이고 물에서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되는 것이다(롬6:3).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와 홍해를 건너서 하나님의 임재 하심 앞으로 나가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 역시 어린 양의 피와 세례를 통과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신약을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한다고 할 때 하나님의 임재의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 있는 사람이 볼 수 없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게 되겠는가? 어린양의 피와 세례를 통해 거룩하게 된다. 어린양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셔서 우리를 하나님 쪽에서 보실 때 거룩하게 보시게 되는 것이고, 세례를 통해 세상과 결별함으로 이제는 하나님만 섬길 준비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우리를 위해 이미 다 이루셨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 죄를 위해 죽음을 당케 하셨다. 그 피로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다. 이것을 통과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이다.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다.


이제 이 사람들 스스로 세례를 받기를 자청했다. 세례는 세상에서 살던 모든 자신의 모습을 물속에서 죽이고 이제 주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만으로 살겠다는 고백으로 물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내가 결단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셔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동거하시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시듯이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셔서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간 것,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로 세상과 결별하는 것으로 이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갈 준비 된 것이다.


애굽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애굽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고 광야로 나아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으로 나아감 같이,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의 임재 하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부터 성막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살았듯이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의 임재함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아직은 임재하심이 없었다. 그러나 애굽과 결별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으로 나간 다음부터 하나님의 임재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 동안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더라도 세상과 결별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진정한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실제적으로 시작된다.


예수를 믿었는가? 잘 하였다. 정말 인생에서 최고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세상과 등지고 광야로 나가자. 그곳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만나자. 그 임재하심 속에서부터 이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미련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듯이 우리 마음에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야 한다.

   
  0
3500
윗글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4) 세상으로부터의 구원
아래글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2) 성경의 두 가지 주제
에드몬튼 새길교회 Newway Baptist Church
3935 114 St NW, Edmonton, AB Canada T6J 1M3 TEL:780-238-2901 newwayedmonton@gmail.com
copyright at Newway Bapt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newwayedmonton.com